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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의 모습

     

    중국 완구기업 팝마트의 대표 피겨 시리즈인 ‘라부부’는 한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 피겨 수집 시장을 흔들었다. 귀엽고 독창적인 디자인, 블라인드 박스라는 판매 전략, 희소성과 한정판이라는 마케팅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적 현상에 가까운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열기가 빠르게 식어가면서 시장 전문가와 소비자들 사이에서 라부부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차 시장(리셀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이 급락하고, 새로운 시리즈의 판매 속도도 둔화되면서 1990년대 미국에서 순식간에 몰락한 비니 베이비 인형 사태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라부부는 수집품 시장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라부부 열풍의 시작과 폭발적 성장

    라부부 피겨는 홍콩 출신 작가 롱카이칭이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캐릭터로, 2015년 팝마트에 의해 상품화되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초기에는 소규모 팬덤에 의해 소비되던 마이너 콘텐츠에 불과했으나, 2019년 이후 ‘블라인드 박스’ 판매 전략과 맞물리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블라인드 박스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어떤 피겨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랜덤 방식으로,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여러 개를 반복 구매해야 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 방식은 소비자의 호기심과 수집 욕구를 극대화했으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SNS에 자신이 뽑은 피겨를 자랑하거나 희귀 피겨를 찾기 위한 ‘교환’ 글을 올리며 커뮤니티 문화를 형성했다. 이는 단순히 인형을 사는 행위가 아닌 ‘뽑기 경험’ 자체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게 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매장에서 줄을 서서 라부부를 사려는 인파가 몰렸고, 특정 시리즈의 경우 발매 당일 완판되는 일이 흔했다. 특히 희귀 아이템의 경우 정가가 10만 원대였음에도 중고 시장에서 수십 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라부부는 단순한 완구가 아니라 투자 자산, 심지어 ‘대체 화폐’처럼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투기적 성격은 더욱 열풍을 부추겼다.

    라부부의 사회·문화적 영향

    라부부는 단순히 장난감을 넘어 중국 사회의 소비문화를 반영하는 상징이 되었다. Z세대를 중심으로 라부부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특정 시리즈를 소유하거나, 희귀 피겨를 전시하는 것은 개인의 경제력과 취향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 되었다. 특히 SNS와 결합하면서 라부부는 단순히 수집품이 아닌 ‘콘텐츠’로 소비되었다. 개봉 인증 영상이나 희귀템 자랑 게시물은 수많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라부부는 하나의 대중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 또한 팝마트는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전략을 통해 브랜드를 강화했다. 유명 디자이너,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해 특별 시리즈를 출시함으로써 팬들의 수집욕을 자극했다. 이처럼 라부부는 단순한 완구 브랜드를 넘어 ‘트렌드 아이콘’으로 성장하며, 중국뿐 아니라 일본, 동남아시아, 유럽, 러시아 등지로까지 시장을 확장했다. 특히 2021년 이후에는 해외 매장 오픈과 글로벌 전시회를 통해 국제적인 팬덤을 확보했다. 라부부 인형은 단순히 귀여운 피겨가 아니라, 한 시대를 상징하는 소비 현상의 중심에 섰던 것이다.

    가격 하락과 열풍의 균열

    하지만 2024년을 기점으로 라부부 열풍은 눈에 띄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와 중국 리셀 플랫폼 첸타오의 조사에 따르면, 2025년 6월에 출시된 미니 라부부 14종 세트의 평균 가격은 1594위안(약 30만 원)으로, 불과 2주 전 기록한 최고가에 비해 24% 하락했다. 정가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한때 수백만 원을 호가하며 ‘없어서 못 구한다’는 수식어를 붙이던 시절과는 큰 차이가 난다. 가격 하락은 단순히 신제품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존의 희귀 시리즈와 한정판 역시 리셀 시장에서 매물이 쏟아지며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 원인으로 ‘희소성의 약화’를 지목한다. 팝마트는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생산량을 확대하고 시리즈를 다양화했지만, 이는 오히려 제품의 차별성과 가치를 떨어뜨렸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라부부를 특별한 수집품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고, 투자 대상으로서의 매력도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블라인드 박스 시스템이 장기간 유지되면서 피로감이 누적되었다.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수십 개를 사야 하는 구조는 소비자 불만을 키웠고, SNS에는 “지갑을 털리는 느낌”이라는 비판이 늘어났다. 이런 불만은 결국 시장에서의 이탈로 이어졌고, 가격 하락과 수요 감소라는 결과를 낳았다.

    비니 베이비 사태와의 비교

    라부부의 현 상황은 1990년대 미국을 강타했던 비니 베이비 인형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한정판과 희소성을 내세운 전략으로 열풍을 일으켰으나, 지나친 투기와 과잉 공급으로 인해 순식간에 거품이 꺼졌다. 수백 달러에 거래되던 인형이 하루아침에 몇 달러짜리로 전락한 것이다. 라부부 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리셀 시장에서 거래 가격이 급락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심리 역시 ‘무조건 갖고 싶다’에서 ‘굳이 필요 없다’로 전환되고 있다. 비니 베이비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희소성과 열광적인 팬덤에만 의존한 시장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라부부가 앞으로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제품 가치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브랜드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라부부의 미래와 브랜드 전략

    라부부가 여전히 완전히 몰락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충성도 높은 팬층이 존재하고,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팝마트는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라부부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글로벌 전시회와 현지 매장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다만 중국 내 핵심 시장에서 보이는 하락세는 분명 경고 신호다. 브랜드가 지속적인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정판 전략이나 생산량 조절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아트, NFT, 메타버스와 같은 신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거나, 기존 소비자들에게 장기적 만족을 줄 수 있는 충성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단순한 소유욕 자극을 넘어 캐릭터 세계관을 확장하고,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른 콘텐츠와의 연계를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결국 라부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한정판 피겨’라는 틀을 넘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IP로 도약해야 한다.

     

    라부부 피겨 열풍은 단순히 귀여운 장난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한 시대의 소비문화를 반영한 사회적 현상이었고, 동시에 투기적 과열과 희소성 마케팅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라부부 사례는 수집 시장이 어떻게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 심리를 자극해 성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거품이 얼마나 빠르게 꺼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라부부와 같은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한 소유 욕구 자극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번 가격 하락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는 시작점일 수 있다.

     

    라부부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지, 혹은 ‘지속 가능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을지는 앞으로의 전략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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