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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 전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치유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의도적 게으름’은 단순한 나태나 무기력이 아니라, 스스로 멈추고 비우는 행위를 통해 심리적 회복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휴식법입니다. 지루함의 수용, 완전한 무위(無爲), 그리고 회복의 기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현대인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드는 이 트렌드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지루함의 수용
지루함은 오랫동안 인간이 회피해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루함은 ‘생각의 여백’을 만들어 주는 긍정적 감정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지루함의 수용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지루함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감정의 흐름과 생각의 방향을 관찰하는 행위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심리학자들은 “지루함은 인간이 다시 창의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리셋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일정한 자극이 없는 시간 동안 뇌는 잠시 외부 입력을 멈추고 내면의 사고를 정리하는데, 이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뇌 영역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영역이 작동할 때 인간은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계획하며, 자기 성찰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최근 SNS와 미디어 과잉 시대 속에서 ‘지루할 틈이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끊임없는 정보 소비와 비교는 뇌의 피로도를 높이고, 휴식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MZ세대를 중심으로 ‘지루함을 감내하는 법’이 새로운 자기 관리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로도깅(Rawdogging Boredom)’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나 음악, 책 없이 오로지 ‘지루함’을 견디며 보내는 행위를 뜻하는 이 개념은, 단순한 무의미함이 아니라 지루함 자체를 ‘감각의 회복’으로 받아들이는 철학적 태도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행위를 실천한 이들은 “지루함 속에서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의 흐름을 다시 느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지루함의 수용’은 회피가 아닌 성장의 전제이며, 멈춤을 통해 더 멀리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완전한 무위(無爲)의 미학
‘무위’는 동양 철학에서 오래된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치유 언어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현대의 ‘완전한 무위’는 생산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과거에는 ‘게으름’이 비효율과 나태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무위의 시간’이 자기 회복과 창의성의 원천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지루함의 철학(Langweile)’이 문화적 화두로 떠올랐으며, 독일에서는 ‘캄프스 A’와 같은 트렌드 잡지가 ‘지루함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무위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계획 없는 산책을 하거나, 침대 위에서 멍하니 있는 것처럼 ‘무의도적인 의도’를 가진 행위입니다. 이런 ‘의도된 멈춤’은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며, 창의적 사고를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WGSN(글로벌 트렌드 분석 네트워크)은 2025년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치료적 게으름(Therapeutic Laziness)’을 선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행동의 일시적 정지’를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전략적 휴식으로 정의됩니다. 결국 완전한 무위는 현대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 생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회복의 기술, 게으름의 재발견
‘의도적 게으름’이 단순한 트렌드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기술로 발전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회복의 과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회복(resilience)은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조절력’과 ‘주의 전환 능력’을 포함합니다.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바로 이 두 가지 능력을 회복시킵니다. 예를 들어,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뇌의 전두엽 활동이 안정되고, 주의 집중력이 회복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나 ‘슬로 리트릿 프로그램’은 단순한 쉼을 넘어 감각과 사고의 속도를 늦추는 훈련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기업 문화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은 직원들에게 ‘의도적 비활동 시간’을 제공하고, 집중 근무와 완전한 휴식을 명확히 구분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생산성과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시스템입니다. 결국 회복의 기술이란 ‘적극적인 멈춤’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가 아니라, 자신을 되찾는 과정입니다. 의도적 게으름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웰니스이며,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의도적 게으름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지루함을 수용하고, 완전한 무위를 실천하며, 회복의 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은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끊임없는 자극과 경쟁 속에서 잠시 멈추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돌봄의 가장 적극적인 형태입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힐링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