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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시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상수원 부족에 직면하며 결국 제한급수에 돌입했다. 20일 오전 강릉시 상하수도사업소 검침원들은 홍제동 일대 주택가를 찾아 세대 계량기 뚜껑을 열고 밸브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반 바퀴 돌려 급수량을 절반으로 낮췄다. 싱크대와 세면대의 물줄기가 눈에 띄게 약해지자 주민들은 제한급수의 현실을 체감했고, 시는 “가뭄 장기화에 따라 실질적 절수 조치가 불가피했다”라고 밝혔다.
제한급수 개시 배경과 현장 조치
강릉은 최근 수개월간 강수량이 평년 대비 크게 부족했다. 홍제정수장과 주요 취수원의 저수율이 평시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생활용수 공급 안정성이 흔들렸다. 단순 공급량 축소만으로는 체감 절수가 어려운 만큼 시는 세대별 계량기 밸브를 직접 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검침원은 주택가를 순회하며 보온재를 젖히고 밸브 위치를 확인한 뒤 ‘50% 잠금’을 표준으로 적용했다. 현장에서는 조정 전·후 수압 변화를 주민에게 설명하고 안내문을 배부해 추가 절수를 당부했다.
이통장·공무원·검침원 총동원, 세대 방문 진행
강릉시는 동 행정복지센터 직원, 이통장, 상하수도사업소 검침원으로 현장 대응팀을 꾸렸다. 팀원들은 사전 교육을 통해 밸브 구조, 누수 확인 절차, 민원 응대 문구를 숙지한 뒤 조에 따라 담당 구역을 배정받았다. 아파트 단지는 관리사무소와 협조해 동별로 일괄 조정하고, 단독·연립주택은 초인종 방문 방식으로 진행했다. 부재 세대에는 ‘재방문 안내문’을 부착하고, 밸브 접근이 어려운 노후 주택은 임시 연장 핸들을 사용해 조정했다. 시는 “조정 완료 세대를 실시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 급수량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적용 범위와 일정, 예외 기준
이번 제한급수는 홍제정수장 급수권역 전역에 우선 적용된다. 주문진읍·연곡면·왕산면 등 일부 지역은 취수원과 배수계통이 달라 1단계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상황 악화 시 추가 편입될 수 있다. 표준 조정치는 세대 기준 50% 감압이나 노유자 가정, 의료기기 상시 사용 가구, 영·유아 다자녀 가정 등 취약계층은 민원 접수 후 현장 확인을 거쳐 탄력 적용한다. 상수도사업소는 “필수 생계·의료 목적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정한다”고 밝혔다.
주민 반응과 생활 불편, 현장 스케치
일부 주민은 수압 저하로 세탁·샤워·설거지에 불편을 호소했다. 홍제동의 한 주민은 “평소 1회에 끝나던 세탁을 두 번으로 나눠야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당수 시민은 가뭄의 심각성을 공유하며 협조 의사를 밝혔다. 현장 취재진이 만난 상점 주인은 “물줄기가 약해 매장 청소 시간이 길어졌지만, 모두가 함께 버텨야 한다”라고 했다. 검침원들은 “직접 밸브를 돌리고 변화된 수압을 보여주면 시민들이 체감하고 동참한다”며 “설명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가뭄 지표와 수자원 상황
기상 당국의 중기 예보에 따르면 동해안권의 누적 강수량은 장기간 평년치를 밑돌고 있다. 증발산량 증가와 낮·밤 일교차 확대는 하천 유량 감소를 부추기고, 취수원의 자연유입이 둔화되면서 처리장 가동률이 제한된다. 상수도 관로의 노후 구간에서 발생하는 누수 또한 공급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강릉시는 비상 급수차 운영, 관정 개발, 인근 지자체와의 상호 공급 협약 검토 등 다층 대책을 병행 중이라고 밝혔다.
도시 전체가 참여하는 ‘절수 캠페인’
시는 행정·교육·민간이 함께하는 절수 캠페인을 가동했다. 가정에서는 샤워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이고, 양치·세안 시 컵 사용, 세탁물 모아 한 번에 세탁하기, 식기 예비 세척 후 짧은 헹굼, 변기 절수 버튼 사용 등을 권장한다. 업소는 영업 전·후 청소 시 고압수 대신 걸레질 전환, 순환식 세척기 도입, 고객 안내문 비치가 권장항목이다. 학교·관공서는 화장실 절수 장치 점검, 옥외 살수 금지, 조경 관수 시간 조정(일출·일몰 무렵) 등을 시행한다. 시는 “시민 한 사람의 10% 절수만으로도 전체 공급량의 큰 폭 절감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민원 대응 체계와 안전 수칙
제한급수 기간 동안 물 부족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가열기 고장, 보일러 점화 불량, 저수조 공기 혼입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시는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해 누수 신고, 수압 변동, 계량기 동결·파손 접수를 받고 있다. 계량기함은 결빙 방지를 위해 보온재를 덮고 빗물 유입을 차단해야 하며, 임의로 밸브를 원복하면 행정 조치 대상이 될 수 있다. 공동주택은 관리사무소와 협의해 동별 시간대별 사용량을 분산하고, 옥상 저수조 수위 경보 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취약계층 보호와 생필수처 공급 유지
시 복지부서는 노인·장애인·영유아 가정에 대한 ‘생활 물 빵꾸 지원’을 시행한다. 방문간호 인력이 도와 기초 위생 유지가 어려운 가구를 우선 지원하고, 방문 목욕·세탁 서비스 일정도 물 공급정책과 맞춘다. 병원·요양시설·어린이집·학교 급식시설 등은 최소 수질·수량 기준을 유지하도록 별도 관로압 조정과 비상 급수차 배치를 병행한다.
경제·관광·상권에 미치는 영향
강릉은 관광 비수기에도 카페·숙박·외식업의 물 사용량이 높은 도시다. 제한급수는 영업 환경을 제약하지만, 상권은 영업시간 조정과 물 재활용 장치 도입 등 자구책을 모색 중이다. 일부 숙박업소는 투숙객에게 리넨 교체 주기 선택제를 안내하고, 카페업계는 얼음·물 사용량을 공개해 ‘절수 동참 매장’ 인증을 자발적으로 추진한다. 시는 절수 준수 업소에 홍보·마케팅 지원을 제공해 민관 협력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장기 대책: 다원화, 스마트 상수도, 리스크 분산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취수원 다원화(댐·지하수·하천복합 취수) △관망 누수 저감(스마트 미터링, 누수 음향탐지) △정수장 고도처리 효율화 △재이용수(중수) 확대 △도시 재개발 시 물 수요관리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특히 스마트 미터링은 세대별 사용 패턴을 실시간 분석해 누수·이상 사용을 즉시 탐지, 물 절약 효과를 높인다. 기후위기가 상수가 된 만큼, 도시 물 관리 역시 ‘위기 전제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제도 개선 과제
현행 법령은 비상상황에서의 급수 제한 권한과 절차를 규정하고 있으나, 세대 단위 밸브 조정에 대한 표준 매뉴얼과 안전 가이드라인은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다자녀·재택근무·특수의료기 사용자 등 가구 특성에 따른 차등 기준, 공동주택 관리주체와 지자체의 책임 범위 명확화, 물 재이용 설비 설치 인센티브 확대 같은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시민이 꼭 알아야 할 Q&A
Q. 수압이 급격히 낮아졌는데 고장인가?
제한급수에 따른 표준 감압일 가능성이 크다. 세대 밸브를 임의로 조정하지 말고 안내문의 연락처로 확인한다.
Q. 부재 중이라 밸브 조정을 못 받았다.
문 부착 안내문에 기재된 일정에 맞춰 재방문을 요청하거나 동 주민센터에 신청한다.
Q. 급수 차질로 위생 문제가 우려된다.
짧은 샤워, 손씻기 우선순위, 손소독 병행 등 생활수칙을 준수하고, 취약계층은 방문지원 서비스를 이용한다.
Q. 영업장 운영이 힘들다.
절수 실천 계획을 수립해 행정과 공유하면 지원사업(절수장치, 홍보물, 컨설팅)을 연계받을 수 있다.
전국 확산 가능성과 경각심
강릉의 제한급수는 지역 이슈를 넘어 전국적 경고음이다. 중부 내륙과 영남 일부에서도 저수율 하락이 보고되고 있어, 기후 편차가 커지는 시기에는 언제든 비슷한 조치가 필요해질 수 있다. ‘평상시 상수도’라는 인식을 버리고, 가정과 산업이 함께 물 사용 체질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해법이다.
세대별 밸브를 직접 잠그는 강릉시의 선택은 불편을 현실로 끌어와 모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고육지책이다. 이번 조치를 통해 시민들은 물의 가치를 재인식했고, 행정은 현장 중심의 관리 역량을 축적했다. 가뭄은 끝나지만, 다음 가뭄은 또 온다.
지금의 절수 경험을 제도화·표준화해 지속 가능한 물 순환 도시로 나아갈 때, 일상의 불편은 다음 위기를 건너는 지혜로 바뀔 수 있다.